고구려 백제와 한국의 연속성은 과연 얼만큼인가?

한국사학계는 그 출발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그 전제조건자체가 잘못된 것임에도 그것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성역화해놓고 무리하게 역사해석을 전개해가니 도통 진실에 접근할수 없는 것이죠.

이는 일본이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사실을 숨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것입니다.

과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일까요?

아주 간단한 사실로 그것을 반박해 보겠습니다.

현대 한국인의 형성과정에 참여한 고구려인과 백제인의 숫자는 아주 극히 소수였다는 사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의 인구는 아마 님도 잘 알고 계시겠죠.

문헌에 의하면 고구려의 인구는 360만이었으며 백제의 인구는 620만이 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이 숫자를 합치면 무려 1000만에 가까운 숫자입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임진왜란당시의 조선의 인구가 고작 600만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신라가 영토적으로 불완전한 통일이긴 하였지만고구려유민과 백제유민을 포용하여 민족적인 통일은 이뤄냈다고 한다면 그 많던 인구는 다 어디로 간것입니까?

삼국통일 당시 신라 고구려 백제의 인구를 모두 합치면 1200만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많던 인구가 900여년 후에는 불과 600만으로 줄어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논리적을 맞는 말인가요?

결국 신라가 통일했을때실제 신라로 흡수된 고구려인과 백제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발해는 결코 소수의 고구려인 지배층이 건설한 나라가 아니라신라에 흡수된 소수의 고구려인과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인을 제외하고 만주에 남아있던 다수의 고구려인들이 세운 나라였으며백제역시신라에 점령당한 한반도 지역의 일부 백제인들만이 신라에 동화되었을 뿐 일본 열도나 중국에 있던 백제인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백제는 삼국중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습니다.

620만이라는 인구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조선 중기때의 인구와 맞먹는 숫자니까요.

그런데 이 많은 인구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의 영토인 전라도지역에 모두 살았던 것일까요?

그것이 아닐꺼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되시죠?

당시 백제인들은 한반도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 있던 백제식민지나 일본에도 많은 백제인들이 살고 있엇습니다.

장보고가 해상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할때 등장하는 중국내 신라인들 사실 이들 모두 구 백제유민들이었습니다.

장보고의 해상네트워크는 구백제 의 해상 네트워크를 다시 재현해 낸것에 불과합니다.바로 중국내 백제 식민지 – 한반도의 백제본토- 일본내 백제식민지를 연결하는 루트죠.

신라가 흡수한 백제인은 한반도에 남아있던 백제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중국에 남아잇던 백제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에 동화되어 갔습니다.(왜구의 정확한 실체는 바로 중국내 구 백제유민들이었음..)

또 일본열도에 남아있던 백제유민들은고구려 신라 이주민들과 융화하면서 일본을 세웠던 것입니다.

일본은 건국초기 백제 계승의식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천지천황은 죽는 그 순간까지 백제부흥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러한 노력은 임신의 난으로 신라계가 정권을 찬탈할때까지 일본의 확고한 방침이었습니다.

신라계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은 천무천황은 백제 계승정신대신 새로운 일본정신의 확립에 노력하게 됩니다. 그것을 구현한 것이 바로 일본서기죠.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 가야계 거기다가 백제식민지 출신 중국계까지 포용해야 했던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선 새로운 이념.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일본인의 가슴속엔 본능과도 같은 향수가 존재합니다.

바로 조상의 나라 백제에 대한 향수,한반도에 대한 그리움., 강렬한 백제계승의식.. 이런 것들 말이죠.

부여씨가 미마쯔로 성을 바꿔도.백제가 일본으로 이름을 바꿔도 ..

그것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남을 일본인 아니 백제인의 본능일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