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망언에 맞추어 튀어 나오는 신라사관>

 이 공간에 일정한 주기 <한 1년을 주기로> 신라시대 이야기를 슬쩍하면서 -마치 우리나라 사람인 양 그 시대를 찬양하는 것 같은 논조를 취하지만,  결국은 우리 역사의 범위를 신라 위주로 깎아 내리고 은연 중에 고구려 백제의 끈을 끊으려고 하는 국적 불명의 사람들이 나타나곤 한다.   고맙기도 하지 -그런데 왜 이런 인간들이 출몰 하는 것일까 ? 다음에 전해 지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 보면 그것이 어느 나람 사람들의 논리고 바램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대륙의 사람들이겠는지 섬나라 사람들이겠는지 말이다.   ‘신라정토설화(新羅征討說話)’ 라는 게 있다 – 이는 4 세기 경의 왜가 신라를 정벌하고 자국의 영토로 하였다고 전하지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것 같은 이야기 인데 – 모두가 가공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미 1930년대의 일본에서 제기되었던 비판이며, 현재 이설화 자체를 역사적 사실로 믿는 전문연구자는 없다. 1960년대 말에 바로 그 일본의 학자 나오키 코우지로우(直木孝次郞)가 이 이야기는- 7 세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여왕들을 모델로 창작된 가공의 이야기임을 확인하였다. 이 설화에 금은보화의 나라로 묘사된 신라관은 4 세기가 아닌 7 ~ 8세기 경의 일본의 신라관으로 년대 조차도 안 맞는 것 허구 맹랑한 것으로 해석하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일본서기』신공황후 섭정원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츄우아이(仲哀)천황 9년[일본서기의 기년으로는 A.D. 200년] 10월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내용을 보면.. “(신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화이진(和珥津; 對馬島에 있는 지금의 鰐浦항)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신라왕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황후가 말하기를 「처음에 장차 금은의 나라를 주겠다고 한 신의 가르침을 받들어 3군에 호령하기를 ‘스스로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지금 이미 재보(財寶)의 나라를 얻었고 또 사람들이 스스로 항복했으니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않다」라고 하였다. 이에 그 결박을 풀고 사부(飼部)로 삼았다. 드디어 그 나라 안에 들어가 중요한 보물창고를 봉하고 도적(圖籍)·문서를 거두었다. 그리고 황후가 가지고 있던 창을 신라왕의 문에 세워 후세의 증거로 삼았다. 그래서 그 창은 지금도 신라왕의 문에 서 있다. 이에 신라왕 파사매금(波沙寐錦)은 미질기지(微叱己知)파진간기(波珍干岐)를 인질로 하여 금은·채색능라(彩色綾羅)·겸견([紗-少+兼]絹)을 배 80척에 싣고 관군(官軍)을 따르게 하였다. 이리하여 신라왕은 항상 80척의 조(調)를 일본국에 바쳤는데, 그것은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이 때 고구려와 백제의 두 나라의 국왕이 신라가 도적(圖籍)을 거두어 일본국에 항복하였다는 것을 듣고 몰래 그 군세(軍勢)를 살피도록 명하였다. 곧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스스로 군영 밖에 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서약하기를, 「지금 이후로는 영원히 서쪽 번국(蕃國)이 되어 조공을 그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므로 내관가(內官家)둔창(屯倉 미야케; 직할농경지)으로 정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삼한(三韓)이다.”  – 참 웃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째야 하는 것인지..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스토리에 대한 일본 학자의 판단은 어떤가 ? 후루타氏(古田武彦)는 《도용(盜用)당한 신화(神話)》라는 저술에서, 신공황후의 이른바 삼한정벌의 설화는 광개토왕릉 비문에 기록된 왜의 활동과는 전혀 다른 ‘사이비(似而非) 사건’이라고 단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설화는 기사 내용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군선(軍船)을 가지고 신라의 도읍에 가까운 해안에 도착하고 그들을 위혁(威[吐-土+赫])하여 이후 신라의 공납(貢納)을 받는 것으로 되었다는 근기(近畿 킨키)천황가의 군선(軍船)에 의한 접촉담이고 국교개시 설화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당시의 상대인 신라와의 전투조차 전혀 없다. 하물며 고구려에 대해서는 교전(交戰)은 고사하고 접촉의 흔적마저 없는 것이다.  이런 주객이 전도되는 해괴 망칙한 논리로 때만 되면 (독도 망언이 나오는 즈음에 맞추어) 신라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 검색어로 신라명신(新羅明神), 신라신사(新羅神社)라고 한번 쳐보고 난 뒤, 과연 위와 같은 일이 벌어 질 수나 있겠는지 따져 보고서 객적은 이야기를 하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헛소리 하다간 바보 되는 길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