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살리는게 능사는 아닙니다.

앞서 인명의 중요함을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동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립니다.

생명은 소종한 것이고,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라도 그들의 인명을 구해야 한다는 데는 쉽게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민에게 의무와 권리가 있듯이 국가에도 국민에 대한 많은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우선 국가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노력을 또는 재화를 무한정 쓰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는 없고 또한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4500만 대한민국 국민이 존재하고, 이 순간에도 많은 생명이 태어나고 또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어가는 많은 인명들 중에는 분명 돈이 부족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라고 해서 무조건 그 인명들을 살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돈이 없어 수술을 못받는 사람에게 모든 수술비를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는 것 처럼.
국가의 국민에 대한 책임도 그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는 생각 역시 약간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세계 대부분 나라의 정부들은 공통적으로 테러에 대해 무협상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협상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또다른 제2 제3의 테러나 납치 인질극을 인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우에 실질적으로 우리나라 정부는 사건 발생 초기 부터 협상에 응하고는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이러한 협상에 대한 인정을 최대한 지연시켰습니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국민들이 또다른 범죄나 테러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명의 소중함은 그 숫자에 따라 얽히는 것이 아니라 1명이든 20명이든 경중을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1명의 국민이나 20명의 국민 모두가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故김선일씨의 사건과 이번 사건에서 정부의 입장이 이처럼 상반되는 것은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행정부의 특성과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기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봅니다.

만일 이번 사건이 탈레반 측 요구의 무조건 적인 수용으로 결말을 맺는다면, 탈레반 뿐만아니라 많은 테러집단 또는 범죄 조직들이 우리국민을 노릴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인명은 분명히 소종한 것이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이와 같은 이후의 여파를 분명히 고려하고 협상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살인자의 목숨도 법에 따라 보호 받는 국가에서, 20여명의 인질들이 어떤 목적으로 거기로 갔던, 그들의 인명은 분명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들의 자잘못을 가려 대처법을 정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이번 사태의 과정과 결과가 이후의 테러나 인질극등의 범죄에 대해 지대한 영향을 끼치리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기에 더욱더 신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사실 故김선일씨 때와 지금의 정부의 대응이 이처럼 다른 것은 여론을 의식한 행정부의 포퓰리즘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명의 국민이든 20명의 국민이든 똑 같은 국민인데, 그 때와는 정 반대로 이처럼 대대적인 협상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故김선일씨가 좀 억울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