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의 발언이 여성주의라는 입장에 대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박유하 교수에 대해 나 자신도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몇몇 그녀의 제자들이나 일본에서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다르게 느껴진다. 다만, 지금까지 자료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여성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의 갈등과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라는 데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 오래전부터, 여성주의적인 입장들은 민족주의와 충돌되어 왔다. 미국이나 서구에서 아시아계여성들의 입장은 늘 민족주의에 대한 저항이였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작가인 맥신 홍 킹스턴에 대해 중국계 민족주의 작가들은 “책이나 팔아먹으려고” 중국인, 특히 중국 남성을 이용해 먹는 작가로 비난하였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위안부의 문제는 분명 남성중심적인 사회속에서 피해 받은 여성들을 대변해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가해남성들이 있는 것이지, 가해 일본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박용하 교수의 입장인 것으로 이해가 된다. 즉, 남성중심적인 제국주의 문화속에서 여성들이 성적으로 수탈 당한 것은 한국과 일본 공히 책임이 있다는 입장으로 이해가 된다. 따라서,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양국의 입장이 화해를 할 수 있으며, 이젠 피해자의 입장에서 해결로 나아가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기금의 문제등은 제외하도록 하자.

충분히 공감이 갈 수 있는 주장이며, 국제적인 페미니스트로서 그다지 낮설지 않은, 흔한 논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타겟이 남성중심적인 민족주의라는데에 있다. 만약 지금까지 보도 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녀의 입장은 다소 큰 모순에 빠져 있다. 만일 제국주의 치하에서의 여성의 문제가 단순히 페미니즘적인 문제로만 그친다면, 체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폴란드, 아프리카의 여러국가들에서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와의 전쟁들 속에서, 여성들의 문제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듯,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국과 그 제국을 움직이는 파시즘의 행태는 교묘한 분리정책과 문화적 배제주의를 포함하게 된다. 즉 식민 치하에서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문제를 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논리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분명 일제 시대 한국에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없었다고 볼 수 없으며, 여성들의 수탈에 남성들도 부역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제국주의의 제도에서 비롯된다. 큰틀에서 놓고 보았을때, 제국은 식민지 남성들을 동참시킴으로써, 식민지 남성들의 도덕적 위치를 무너뜨리고, 그들을 식민주의의 일원으로 동참시키게 된다. 물론, 그들 중에는 알아서 부역을 하였던, 수많은 남성 지식인들도 있다. (물론, 김활란 같은 여성지식인도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제국주의의 문화정책의 일환이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와 페미니즘의 입장의 차이는 제국이라는 큰 틀에서 모순될 수 밖에 없게 되며, 그 모순은 제국주의의 정책으로 비롯된다.

위안부의 문제의 핵심은 국제적인 사법적 심판과 배상이다. 단순히 화해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은 더 이상 배상의 책임이 없다고 우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버틴다. 아마도, 당시에 대한 자료들은 731부대나 난징 대학살에 대한 자료들처럼 철저히 사라졌을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페미니즘적인 입장은 모순적이다. 왜냐하면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여성주의적인 비판과 화해의 문제가 아닌, 국제적 인권과 사법적 책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민족주의도 넘어선다. 한국뿐 아니라 호주, 동남아시아의 여성들까지도, 지금까지 아무런 배상을 받지 못했다. 금전 뿐 아니라, 일본 스스로의 위안부에 대한 인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몇가지 비판과 해결책들로 마무리를 하려 한다.

첫째, 일본군이 시스템적으로 위안부 제도를 이용했음을 인정해야 된다. 자신들은 여성을 사들인 적이 없다고 하지만, 그건 교묘한 핑계에 불과하다. 징용을 하지 않고, 일반업자들을 시켜서 사들인 것도 징용의 일종이다.

둘째,교묘한 정치적 행위들을 중지해야 된다. 박용하 교수가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스스로가 일본의 전략에 이용당했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본인은 순수한 입장에서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으나 (누가 그녀가 순수하게 그런 발언을 했다고 볼수 있을까?) 분명히 일본의 우파들과 언론들은 그녀의 발언을 지금도 이용하고 있다. 그 점에서 그녀는 조심했어야 한다. 수많은 한국이들이 일본에 전략적으로 이용당해 왔음을 그녀는 알았어야 했다.

세째, 단순한 마녀사냥이 있어서는 안된다. 박용하는 그저 자신의 의견을 밝힌 것이다. 마녀사냥은 안된다. 다만, 지식이들 부터 자성의 목소리를 높혀야 한다. 지금,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본의 진정한 자성과 배상이다. 아베나 고이즈미의 정치적인 발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위안부 문제를 정식으로 역사로 인정하고, 사법적 배상을 다하는 것이 일본의 도리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란도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