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가의 비밀

백제역사상 최대 미스테리는 개로왕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한성백제가 멸망한후 보여지는 백제의 왕위계승에 관한 것이다.

고대국가의 왕권강화과정을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왕위의 계승이 형제세습에서 부자세습으로 변모해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공통된 왕권강화과정이었으며 백제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런 맥락으로 볼때 개로왕의 사후 그의 동생인 문주가 왕위를 계승한 것은 결코 자연스럽게 납득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설사 개로왕의 동생 문주가 계획적으로 왕위찬탈을 노린 것이 아닌 장수왕의 침공으로 인한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것이었다 하더라도, 개로왕이 또 다른 동생 곤지에게 임신중인 자신의 왕비를 맡기며 일본으로 피신시킨 사실은 개로왕 자신이 동생문주의 왕위찬탈을 우려했으며 왕비와 그녀의 뱃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문주로부터 멀리 벗어나게 하여 지키고 싶어했음을 알수있다.

새롭게 문주왕의 혈통으로 이어지게 된 백제의 왕위계승역시 순탄치 않았다.
문주왕과 그의 아들 삼근왕 역시 재위2년만에 모두 암살당함으로써 문주왕의 혈통역시 단절되고 만다.
이는 분명 백제내에 왕실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반발 세력이 왕권을 크게 위협했음을 알수 있게 해준다.

삼근왕의 뒤를 이은 왕은 동성왕이다. 그런데 이 동성왕은 바로 일본으로 망명했던 곤지의 아들이다.
어째서 그가 왕이 되었던 것일까? 왜 삼근왕을 암살했던 저항세력은 굳이 일본에 망명했던 곤지의 아들 동성왕을 왕으로 옹립해야 했던 것일까?

백제내에 아무런 세력기반이 없던 망명객 곤지의 아들 동성왕은 무슨 힘을 바탕으로 백제의 왕권을 뺏어올수 있었을까?
이는 당시 왜가 백제 왕위계승문제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동성왕 역시 기록에 보면 반란세력에 의해 살해당하고 만다.
그리고 드디어 개로왕의 혈통이 백제의 왕위를 잇게되는데 그가 바로 무녕왕인것이다.
무녕왕은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기를 보냈고 40살이 되어서야 백제로 들어와 왕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백제의 사정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개로왕의 아들로써 정통성을 갖고 있다하러다라도 이것은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수 없다. 역시 일본의 영향력을 등에 업지 않고서는 설명할수 없다.

혹시 진실은 이것이 아니엇을까? 일본은 백제내 문주왕에 대한 저항세력을 지원하고 그 결과 문주왕계의 백제왕실을 타도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일본에 망명해있던 곤지의 아들을 백제의 왕위에 앉힘으로써 백제에 대한 간접지배를 시도한다.그러나 동성왕역시개로왕의 적자가 아니라는 정통성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암살당한다. 그러자 일본은 개로왕의 적자(무녕왕)를 보내 왕으로 삼아 민심을 수습게 한것이다.
그제서야 백제의 왕실은 안정을 되찾고 중흥을 맞이한다. 고구려 장수왕의 원정으로 사실상 멸망해버린 백제를 다시 일으킨 것은 결국 왜의 세력이다.
백제의 중흥을 가져온 무녕대왕 이후의 왕들은 백제와 왜를 아우르는 거대 연합제국의 반도내 영토를 다스리던 왕의 성격이었다.

이 연합제국의 중심지는 반도가 아니라 왜였다. 왜의 도움으로 왕위를 차지할수 있었던 백제왕가가 왜에대해 종주권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가 웃을 일이다.
한국의 국수주의적 사학자들의 억지에 정말 진저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