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발 달린 까마귀 vs 붉은악마 ??

2002년 한일 월드컵 – 열기도 대단 했다. 아마 이 사건 만큼 한국이란 나라가 세계 각처 안방 구석까지 비추어진 일은 전무후무 했으리라 생각될 만큼 그런 사건이었다.

이당시 개최국 한, 일 양국의 응원도 치열했는데 그때 응원단이 들고 나온 상징물을 보면 그것이 단순한 캐릭터 창조가 아닌 역사 전쟁의 불을 지폈다 할 만한 것이어서 간단히 그 상징물의 기원을 본다.

의 것 –>삼족오(三足烏),BC 1987

‘세 발 달린 까마귀’다.

BC 1987년 8대 단군 우서한 때 대궐로 날아왔다는 까마귀다. 그 까마귀는 넓이가 석자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까마귀 삼족오(三足烏)는 나중에 고구려 벽화에도 나타나는 동물인데, 우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에서 이 ‘삼족오’가 일본의 신화 속 동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고구려는 삼족오 다시 말하면 까마귀를 태양의 상징이라 보았다고 하고 자신들의 상징물을 삼족오로 택해서, 고구려가 전쟁시 들고 나가는 깃발에 삼족오가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의 것–>치우천왕(蚩尤天王, BC 2748~BC 2598)

중국 역사에서 치우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머리가 구리와 쇠로 되있고 폭풍우를 뿌리기도 한다. 치우천왕은 외에도 , 등 우리 역사서에 언급돼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정사인 사마천의 와 , , 등에도 실려 있다.

치우천왕은 BC 2706년(42살) 환웅의 자리에 올라 BC 2598년(151살)까지 재위 109년 동안 동아시아 일대를 호령했다고 묘사된다.그는 10년 동안 중국의 황제 헌원(BC 2692~BC 2592)과 73번 싸워 모두 이겼다.

치우천왕의 능은 능은 산동성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에 있었던 것으로 에 전해지는데, 춘추전국시대에는 이곳 제(濟)나라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됐고, 이어 진나라, 한나라 때는 주민들이 제를 지냈다.

또 봉선서에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이 전쟁에 나가기 앞서 언제나 치우에게 제를 올린 다음에 출전했다고 한다.

치우천왕은 신화시대인 그때 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 신라 세나라 역대 왕릉 모두에 도깨비상의 모습으로 조각된다.붉은 도깨비, 악마의 모습이다.

열광하던 두 나라의 응원단 깃발의 캐릭터 이지만 이때 이미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상고사의 한부분을 새겨 넣은 것인데 우선 삼족오(三足烏) 와 치우천왕(蚩尤天王)의 출현 연대가 우선 비교가 안되고 세발달린 까마귀가 우리의 고구려 벽화에 그려져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았을까?

그런 의미에서라도 잃어버린 상고사 중 에 묘사된1세 단군 왕검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고조선 2096년 왕조사라도 찾아 와야 할 터인데,

아직도 우리는 수(壽)가 1908세였다고 전해지는 속의 단 1명의 단군만을 알며 지내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