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에서나 상징적 존재들이 있다

빨치산이란?1.‘빨치산 교육’의 의의. 어떤 사회에서나 상징적 존재들이 있다. 그것은 군주국가의 왕이나 종교단체의 수장처럼 개인일 수도 있고, 파리의 개선문과 같은 특별한 기념물이나 독일 뮌헨의 옥토버 페스트(10월축제)처럼 독특한 문화적 행사일 수도 있다. 또한 나치의 상징물과 같은 부정적인 것도 있다.2.‘빨치산 교육’의 법적의미.그렇게 보면, 최근 전주지법의 판결로 인해 빨치산과 사법부가 얽히게 된 것은 매우 기묘하다. 빨치산은 그 어원과 역사가 말해주듯, 정상적인 국가질서를 부정하고 투쟁하던 사람들이며, 사법부는 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즉, 사법부가 국가와 법의 수호자를 상징한다면, 빨치산은 국가의 파괴자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빨치산을 미화시킨 교사에 대해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을 납득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은 것이다.3.‘빨치산 교육’의 참석자.지금까지 검찰의 공소사실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전해진 바에 따르면, 문제의 교사는 학교에서 빨치산 활동을 소개했으며, 이른바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학부모 등 180여명을 인솔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학생은 빨치산 출신 장기수들을 칭송하는 내용의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다고 한다.4. ‘빨치산 교육’의 민주주의적 판단.어찌 보면 별것 아니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과거와 달리 민주화된 시대에 다양한 생각이나 주장이 있을 수 있고, 국가에 대한 강한 비판도 허용되는데 빨치산에 대한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물론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그러한 포용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까지 포용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자살’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5.‘빨치산 교육’의 결과.빨치산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처럼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여기서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해 보자. 국가가 위태로워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유사한 것들이 계속 중첩될 경우의 위험성은 매우 높아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법이 이미 그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6.‘빨치산 교육’의 법관의 태도.법관이 법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의 소신에 따른 것이 아니라, 법치의 이념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한 법 적용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제103조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정을 법관 개인의 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법관으로서의 직분에 의한 직업적 양심에 따른 재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만일 그렇지 않고 법관이 법을 뛰어넘어서 개인적 양심에 따라 주관적인 판결을 하게 될 경우에는 어떤 법관이 사건을 담당하는지에 따라 형량이 차이날 수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유죄와 무죄도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3심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급심의 결정은 법관의 개인적 양심에 맡겨도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법원에서 양형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7.‘빨치산 교육’의 사법부의 공정성.사법부의 독립을 생각할 때, 법원의 판결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이 인정되는 이유는 주권자인 국민을 위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사법부의 독립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결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관의 주관적 양심을 위해 이용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그러잖아도 최근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법부의 본질과 맞지 않는 판결이 자칫 사법부의 위상을 흔들어 놓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