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매우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도 1992년 7월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할 당시에는 전날 ‘정령’ 형태로 공식발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한 사전 절차마저도 없었다.
 
체제강화와 물가안정 등 북한이 화폐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개인이 안방에 깔고 있는 돈과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는 지하자금을 수면 위로 끌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장롱 속에 돈을 넣어두고 꺼내지 않고 있으니까 당국 차원에서 화폐의 사장을 막고 돈을 유통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이와 같이 표면상의 이유는 심화된 북한사회의 빈부 격차를 줄이고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잡으며 동시에 해이해진 사회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다목적 조치라고는 하지만, 실은 김정은의 권력 세습을 위한 사전정지 조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으로의 권력이양을 앞두고 이완된 체제를 다잡으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내부적으로 적자생존의 북한당국으로서는 결코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인간의 권력 세습을 위해서 화폐개혁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온 나라를 혼란으로 밀어 넣는 일도 서슴없이 해치우는 북한이고 보면, 오직 그 울타리안에서만 가능한 21세기형 괴상한 폭정형태이다.
 
교환 비율이 구 화폐 대(對) 신 화폐 100:1이라고 밝혀졌으나, 교환 최고액수는 10만원. 이러한 제한 조치로 인해 목숨을 걸고 모아 숨겨놓은 돈이 하루아침에 휴지로 변하게 생겼다. 여기서도 녹아나는 건 오로지 주민들뿐.
 
북한에서 뼈저린 체험을 한 탈북자들은 현지 주민들이 고통으로 내쉬는 그 한숨과 무너지는 심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진 자는 벌써 가질 대로 가졌고 이미 달러와 금으로 은닉 보관된 상태, 그 마저도 넘쳐나 중국 현지에 부동산을 사놓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거기에 더하여 화폐교환 정보의 공유도 일반인들보다 빨라서 그 대책 또한 광폭적이다.
 
이들은 주로 화교, 군부대 군인들. 대학기숙사와 병원의 장기입원 환자들을 통한 교환 등 다양한 방법을 적용,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 당국도 이것을 알아챘는지 이미 압록강 지역에서 배들의 왕래를 일체 차단시킨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누구를 원망할 것도 못 된다. 자유 경제, 개인 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북한체제 하에서 어디에다 하소연 할 데도 없다. 힘없어 애끓는 주민들만 그냥 그대로 고스란히 당하는 것이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고 했던가? 70년을 하루같이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만을 되뇌며 장장 충성만을 알았던 북한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안다. 사랑해서 사랑을 잃는 것보다 전연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이것은 북한 당국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불만의 씨앗으로서, 바람이 불어올 수록 그 씨앗은 더 넓은 대지로 퍼져나간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불만은 ‘장군님’을 “걔” “쟤”로 부르는 차원을 넘어 보다 강도 높은 비난과 행위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또한 김정일의 중풍으로 불안에 떠는 북한 위정자들이 아주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목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대목에서 북한 주민들이 용기를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 용기란 일종의 구원임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그 비열한 배반과 갈취에 대한 갚음이 어디에 있는 건지 확실한 현실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 그 지름길은 바로 우리들 탈북자들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