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권환수를 열렬히 주창하던 조선일보

얼마전 전임 국방장관들이 모여서 현 국방부 장관에게 전시작전권 환수에 반대하는 입장을 전달한 일이 있다. 그리고 조중동을 위시한 수구언론은 연일 전시 작전권 환수에 대한 반대 여론을 맹렬히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불과 10여년 전에는 정반대 였음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들의 파렴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라.

아래는 평시 작통권이 이양된 1994년 12월 1일자 사설의 일부이다.

“냉전 이후 국지분쟁의 귀결에서 보듯 국가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럴 수가. 무려 12년 전에 는 전시작통권 환수까지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이 사설에서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우선과제로 꼽고 있지만, 이는 사족에 불과하다.

이어지는 해설기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군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진정한 한국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몇 달 전인 1994년 10월 7일자 신문을 보자.

“군 관계자들은 이를 계기로 한국이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독자적인 작전지휘체계를 확립하게 됐다고 환영하고 있다. …(중략)…따라서 한국군이 오는 2000년대 이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전시 작전통제권의 환수까지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94년이면 북핵위기 때문에 클린턴 행정부가 영변폭격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던 해다. 극적으로 제네바합의에 이른 것이 그 해 10월 21일이었다.

그러니까, 한반도 안보상황이 지금보다 훨씬 더 불안했던 시절에 당시 문민정부는 2000년대 전시작통권 환수까지 내다보고 평시 작통권을 환수한 것이다. 은 이를 “주권국가의 자주성 확보”라고 칭송했을 뿐 아니라 전시작통권을 “산을 넘어서라도” 확보해야 할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2년 전과 정반대 주장, 도대체 이유가 뭘까

왜 은 12년 새 정반대 주장을 하는 것일까? 국가안보를 위한 충심에서 말 바꾸기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을 비판하는 데에 국가안보를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몇 년간의 은 사사건건 정권 비난에 앞장섰다. 열명이 뜻을 모아 한 가지 의미있는 일을 도모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중 한 명이 작심하고 그 일을 그르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탄핵에서부터 최근의 부동산 정책이나 정치·경제개혁의 문제, 외교·안보문제, 그리고 여전한 색깔논쟁에 이르기까지 의 행태는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 12년 동안 도대체 무슨 변화가 있었길래 가 180도 정반대의 입장으로 돌아섰는지, 현직 국방장관을 모욕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답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공식에 부쳐 어느 시인은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썼다. 그만큼의 애국심이나 애교심이 있지는 않더라도 사리사욕에 따라 국가 중대사를 농락하는 이들을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시를 쓰지 않을는지.

‘누가 망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을 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