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반일은 하면서 왜 반공은 하지 않는가?

반일은 하면서 왜 반공은 하지 않는가?
[대기원 2005-06-08]| 2005·09·02 12:54 | HIT : 962 |

▲ 중공은 마오쩌둥 시대에 무려 7천만의 중국인을 학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Boxun)

최근 중국 국내인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로 반일시위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마오쩌둥이 통솔했던 중공이 토지개혁시기에 건달이나 가난한 고용농민을 선동해 수많은 농촌 부녀를 폭행하고 윤간했던 사실에는 왜 잠자코 있는가?

물론 중국 여성들은 일본군의 심한 모욕을 받았지만 ‘매춘으로 황군을 매수한 죄’가 추가되거나 이로 인한 강제 자백을 강요받지 않았다. 그러나 중공의 토지개혁시기에는 수많은 농촌 여성들이 중국인 건달이나 가난한 고용농민들에게 패륜적인 폭행과 윤간을 당한 후, 중공에 의해 ‘매춘으로 가난한 농민을 매수한 죄’가 뒤집어 씌워졌다. 그리고 강제적으로 죄를 자백시켜 대부분 여성들이 궁지에 몰린 끝에 자살했다. 그런데도 중공은 자살한 여성들에게 ‘법의 처벌이 두려워 자살한 죄’까지 덮어 씌웠다.

나는 중학생 때 토지개혁 선전 및 응원대에게 참가한 적이 있다. 만약 자살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들은 명령에 따라 온 마을을 돌며 크게 소리쳤다. “XX가 법의 처벌이 두려워 자살했다. 자살 때문에 죄가 더욱 무거워졌다. 그녀는 죽는게 당연하며 역시 좋지 않는 결말을 맞았다” 중공이 강제로 추가하고 꾸며낸 죄명은 사망자 가족까지 연루되었으며 자손들까지 일생토록 출세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왜 중공에 대해서 변상을 요구하지 않는가? 이는 세계 역사상 가장 사악한 집단강도 살인사건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왜 기소하지 않는 것인가? 아직도 시기상조란 말인가?

예컨대,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반대하면서 왜 중공 고층간부의 마오쩌둥 기념당 참배는 반대하지 않는가? 게다가 마오쩌둥의 계급 투쟁 사상을 정치강령으로 하는 공산독재 정치를 왜 반대하지 않는 것인가? 야스쿠니 신사의 14명의 1급 전범이 범한 죄를 다 합쳐도 수천만을 학살한 마오쩌둥이 범한 죄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 전쟁 보상을 시키면서 왜 중공이 지금까지 범한 모든 죄에 대해 보상을 시키지 않는 것인가?

나는 ‘후난성의 세 명의 젊은이’(역주 – 19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에 페인트를 칠하고 천으로 가린 세 명의 젊은이)라는 시(詩) 중에서, “천안문 앞에 선 세 명의 용감한 장사, 패왕(覇王)의 얼굴에는 허위가 가득하네. 그들은 야박하게 공안에 붙들렸지만, 반공 민주인사들의 뜻을 지울 수 없네” 라고 말했다. 천안문은 마오쩌둥이 있을 장소가 아니다.

나는 ‘성녀(聖女) 린자오(林昭) 여사’(역주 – 린자오는 베이징 대학에서 언론을 전공했으며 독립적인 사고와 공산당에 대한 솔직한 비판으로 1957년 우파로 분류되었다. 이후 중공에게 간첩으로 모함받아 처형됨)라는 시 중에서, “항저우에서 세대 교체가 일어나니, 긴 세월을 거친 교체 후 새로운 광경이 나타났네. 진회(秦檜) 대신 마오쩌둥이 엎드려 조아리며, 악비(岳飛) 대신 린자오가 민족 영웅이 되었네” 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그러한 시기가 오면 꼭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역주 – 남송의 충신 악비는 간신 진회의 모함을 당해 죽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악비를 존경하고 진회를 증오했으며 지금도 항저우에는 진회가 무릎꿇고 조아리는 상에 관광객들이 침을 뱉고 있다고 한다. 중공은 현재 악비를 중국영웅 명단에서 제외하고 후세에 오명을 남긴 진회를 미화시키고 있다.)

1992년 단체여행 당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우리 부부와 캐나다인 부부는 마오쩌둥 기념당에 참배하길 거부했다. 나는 이전에 시골에서 본 광경이 생각났다. 시골 집들에서는 보통 선조의 위패 위에 마오쩌둥 조각상을 올려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일부 중국 노인들은 현관의 문을 닫아 걸은 후 마오쩌둥 조각상의 눈을 찌르면서 욕을 했다. 그들의 분노는 마치 마오쩌둥의 눈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중국인들이 마오쩌둥 기념당을 참배하거나 마오쩌둥 조각상에 제사 지내지 않도록, ‘대기원시보’가 제안한 중공의 서화, 깃발, 뱃지 등을 소각하듯이, 중공과 결별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일으킬 것을 호소한다.

나는 전후(戰後) 민주 일본의 합법성을 인정하지만 중국공산당의 합법성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나는 본래부터 중국의 농민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오히려 민주적인 일본의 시골 농민이 될지언정 결코 중국대륙 농민이 되고 싶지 않다. 왜 중국인들이 반일은 하면서 중공은 반대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학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바란다.

글/ 톈푸(田夫)
※주 – 저자 톈푸는 문화대혁명 당시 광저우시 최초의 청년지식인 황무지 개척단 일원이었다.

2005년 9월 1일
데일리 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