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진보 , 수구좌파에게 다시는 속지 말아야

짝퉁진보 , 수구좌파에게 다시는 속지 말아야

짝퉁’ 진보에 다시는 속지 말아야

고급 승용차로 다가가는 중년의 옛 남자를 먼발치서 바라보는 여인의 독백.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 이 광고 카피(문안)가 묘하게 내 자존심을 건드린다. 나이 쉰이 넘도록 소형차를 끌고 다니는 나는 뭔가. 멋지게 살았단 얘길 들으려면 저 정도의 고급차는 굴려야 하는가.

이른바 명품일수록 부자 콤플렉스(열등감)나 성공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스노비즘(snobbism) 마케팅’이 효과를 본다. ‘속물근성(俗物根性)’으로 번역되는 스노비즘은 사람들의 과시욕을 일컫는 말이다. 명품으로 과시하고 싶은 사람에게 비싸지 않은 물건은 더는 명품이 아니다. 따라서 명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고가 전략으로 나가야 성공한다.

그러나 스노비즘 마케팅에 현혹되어 무리하게 명품을 구입한 소비자는 그 뒷감당을 하느라 고생한다.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은 합리적이지만, 현실의 인간은 때로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며 근시안(近視眼)적이어서 나중에 후회할 짓도 저지른다.

이런 현상은 대통령, 국회의원, 시도지사와 같은 선출직 공무원을 뽑는 ‘정치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상품시장에서는 내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니까 그나마 합리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정치시장에서의 내 한 표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근시안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지금이야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측이 제기한 이회창 후보의 3대 의혹사건에 많은 국민이 현혹되었다. 그 유명한 노 후보의 눈물은 국민의 감성을 자극했다. 여기에 넘어간 우파 성향의 많은 유권자는 좌파 정권이 초래할 엄청난 결과를 잠시 망각한 채 근시안적으로 투표하고 말았다.

지난 대선에서는 40대의 선택이 승부를 갈랐다. 사회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에는 나이 서른 이전에 좌파가 아니면 ‘따뜻한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서른 넘어서도 여전히 좌파이면 ‘냉철한 이성’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2002년 대선 당시 우리의 40대는 ‘불혹(不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右)에서 좌로 많이 흔들렸다.

그 당시 40대는 1970, 80년대에 20대가 되었거나 대학을 다녔던 세대다. 그들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꽃잎처럼 스러져 간 분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지닌 그들이기에 1987년 6월항쟁 때는 ‘넥타이 부대’로 부활해 먼저 간 분들의 민주화 노력에 늦게나마 동참해 보고자 노력했다. 40대의 이러한 ‘민주화 콤플렉스’를 꿰뚫어본 노무현 캠프는 자신들을 ‘명품’ 진보로 포장했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며 명품 진보로 포장했던 그들이 사실은 폭압적 김정일 정권의 인권유린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비겁한 ‘짝퉁’이라는 것을. 테러를 당해 입원 중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60바늘을 꿰맸다니 성형도 한 모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수구 좌파라는 것을.

설령 집권 좌파가 명품이었다 해도 우리 국민은 그들에게 더는 빚진 게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아스팔트의 전사로 활동할 때 대다수 국민은 산업화를 위해 피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업화가 실패했다면 좌파의 집권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젠 제법 윤이 나는 얼굴로 골프장을 드나드는 전직 운동권 집권 좌파에게 거꾸로 계산서를 요구할 때가 왔다. 그날이 바로 1주일 뒤의 5·31지방선거요, 내년 대선이다.

그동안 집권 좌파는 도덕성과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부도덕한 수구세력으로 몰아세웠다. 그랬던 그들이 선거철이 되자 “국민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죄한다”며 노무현식 눈물 마케팅을 되풀이하고 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은 과거의 실수를 잊지 않기에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인간은 때로 건망증이 심하고 감정적이다. 내년 대선에서 명품을 가장한 짝퉁에 우리 국민이 또 속지나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