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불바다로 몰겠다는 한나라당은 들으라!

반 만 년 역사상 조선조 까지 우리에게는 세 권의 해외 여행기가 탄생했다.

1,8 세기 신라 혜초 스님이 남긴 “왕오천축국전” 인도 여행기
2,1780 년 중국을 다녀 온 박지원의 “열하일기”
3,1488 년 제주도 관료였던 최부가 남긴 “표해록” 표류기

1488 년이라면 조선조는 무능력한 수구 꼴통들의 사색당쟁이 워밍업 단계를 지나 연산군의 피비린내 나는 사화를 기다리고 있었고 유학자들의 탁상공론이 최극성을 부려 도요토미의 수차례에 걸친 선전포고에도 속절없이 당한 임진란 딱 백 년 전 성종조였다.
제주에서 관직에 있던 최부는 부친상을 당했고 나주를 향해 배를 탔고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 중국까지 밀려 갔다 돌아 와 그 곳에서 정치,경제,문화,사회 생활,지리 등 인상기를 자세히 기록해 두었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성종이 최부의 “표해록”에 감탄하여 승진시켜 주자 시기질투에 미친 유학자들의
음해 작전으로 결국 갑자사화 때 함경도 탄천으로 귀양 보내지고 1504 년 사약을 받아 처참하게 죽었는가 하면 죽은지 겨우 2 년 만인 1506 년에 복권되는
전형적인 조선조 사색당쟁 희생양이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무식한 주제에 정치 깡패에 걸맞는 단결력으로 발악을 해 대는 한나라당 패거리들의 고함 소리가 귀에 따갑구나!

최부는 비록 숨막히는 수구 꼴통 유학자 집안의 자식이자 가렴주구 조선조 전형적인 관료로 일생을 허송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평생 민초들(농공상인)을 위해
연구하고 몸소 실천했다.
풍랑으로 중국에 일시 정착해 있을 때 그는 높은 학식과 인품으로 중국 유학자들을 감동케 하는 일방 농민들의 농사법을 유심히 살펴서 수차(water wheel)의 훌륭함을 발견하고 조선에 돌아 와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수차로 논에 물을 용이하게 대게 하여 가뭄 때도 덜 힘들게 물을 끌어 들이게 하여 조선조 농업에 획기적인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입만 살아 책상물림으로 끝난 대부분의 조선조 관료 내지 유학자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양반이 무지랭이 농민을 위하여 육체 노동(수차 만들기)은 하지 않는 것이 당시 비뚫어진 시대사조였던 것이다.

“표해록”은 최부가 명나라에서 겪은 단순 감상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최부의 신사조나 신기술에 또는 새로운 세상,학문에 대한 부단한 탐구심과
도전이 “표해록”의 생명인 것이다.
최부의 “해표록”에 포함된 민족 자존주의와 열린 사고는 60 년이 흘러도
동서 냉전 사고에서 못 깨어 나고 미국의존형 반민족적 망언을 연일 내뱉고
있는 시대 역행적인 한나라당 수구 꼴통들이 겸허하게 수용하고 크게
반성해야 할 사상이다.

*******최부의 “표해록”은 내용이나 표현력의 훌륭함으로 이미 1965 년 뉴욕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던 John Meskibill 에 의해 영역되었고 전세계 학계에서
연구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