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좌.우 합작과 민족통일

해방정국 직후 우사 김규식과 몽양 여운형의 주도로 실시된 좌우 합작은 결론적으로 실패하였다, 실패 원인은 다각도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몽양의 암살 사건이었다. 몽양은 김구. 서재필의 해외파 독립 운동가와는 달리 일제시대부터 국내에서 조직을 다지며 해방을 준비했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후 발빠르게 건국준비위원회를 설치(이하 건준)패망한 일본의 관리로부터 조선에 대한 자치권과 치안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건준은 조선 전체를 통제하는 유일한 기구로 발돗음 하게 되었다.

특히 해방후 상해임부 정부등 해외파 독립운동가들이 하나씩 귀국하면서 새로운 국가건설의 가속도는 점차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때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해서 소련의 지지를 받는 김일성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남한에도 초기에는 좌익계열의 정치세력이 강력했는데 이에 미군정은 극단적인 좌익인 이른바 남로당의 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온건한 중도좌익계열인 여운형과 중도 우익계열 김규식과 협상을 하여 이른바 좌우 합작을 하게 된다.

극우와 극좌를 배격하는 온건한 좌우 합작은 남한내의 극좌세력인 남로당과 극우친일 매국세력인 이승만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것이었고 이에 이승만은 좌우 합작을 반대하고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미군정청에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남로당의 폭력지랄과 이승만 세력에 의해 몽양이 암살당하면서 김규식은 사실상 고립되었고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은 대세가 되었다, 이에 북한도 좌우 합작을 포기하고 독립정부 수립에 나서며, 실질적으로 적화통일론을 채택하게 된다.

오늘날 통일에 대한 열망은 높아만 가고 그 방법론에 대한 논의 역시 여러 각도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에 해방정국에서 강력한 통일대안으로 제시되었던 좌우합작을 오늘날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90년대 검토되었던 흡수통일은 비싼 비용 문제와 전쟁의 위험성 등으로 인해 폐기되었고 이제 대안은 연방제로 좁혀졌다. 일부 사람들이 연방제를 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남북 연방의회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데, 이건 사실 새로운게 아니다.

이미 해방정국에 좌우합작 운동이 있었고 이건 당시 미군정에서도 찬성할만큼 온건하면서도 합리적인 내용이었다. 만일 이승만이 몽양과 백범을 암살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미 통일된 조국에 살고 있을 것이다. 두분이 암살당하면서 좌우 합작 운동과 남북 연석회의등 모든 통합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고 조국은 분단되었다.

이는 초기 북한에 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이 대권을 잡는 결정적인 사건이고 이렇게 보면 김일성 독재의 일등공신은 이승만인 것이다. 이제는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가야만 한다. 이는 시대의 요청이자 명령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미 60년전에 시도되었다가 좌절된 좌우 합작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남북통일의 새로운 모델을 기획하는데 좋은 재료로 쓴다면 이는 필시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에 큰 밑걸음이 될 것이다.

국가부도의 멍에를 뒤집어쓴 김영삼 전대통령이 역설적이게도 60년 남북 분단사에서 가장 멋있는 말을 남겼다, – 어떤 이념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

남북통일 모델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