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단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삼국유사’는 신라가 중국 전한(前漢) 선제(宣帝) 오봉(五鳳) 갑자년(甲子年)(B.C 57)에, 고구려가 전한 원제(元帝) 건소(建昭) 계미년(癸未年)(B.C 38)에, 백제가 전한 성제(成帝) 영시(永始) 을사년(乙巳年)(B.C 16)에 각각 건국된 것으로 기술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상한이 모두 중국 한(漢)나라 시대로 되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 나라 고대사 연구에 쌍벽을 이루는 자료지만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의 기술을 삼국시대로 국한시킨 한계를 갖고 있고, ‘삼국유사’는 단군 및 고조선의 역사까지 다루고 있지만 고구려·백제·신라의 출발을 모두 중국 서한(西漢)시대로 한정시켰다.

그동안 우리는 입으로는 반만년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삼국사기’‘삼국유사’ 위주로 고대사를 연구하고 가르쳤으며, 한·당시대에 존재했던 고구려·백제·신라가 우리 역사의 뿌리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문학과 역사가 다른 점은 문학이 있을 수 있는 일을 쓰는 것이라면 역사는 있었던 일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참이어야지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해서도 안되고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해서도 안되며 동일한 것을 다르다고 해서도 안되고 다른 것을 동일하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이어야 할 역사의 한부분이 크게 왜곡된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바로 그 다른 나라의 역사책을 보는 것이다.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나-당 연합군은 먼저 백제를 공격했다.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에 이르렀고 소정방이 이끈 당군은 금강하류로 침입했다. 이로써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 함락됐다.’

이것은 백제 멸망에 대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 실려 있는 기록이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고구려는 668년, 신라는 935년에 멸망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상식이다. 따라서 백제는 삼국 중 가장 먼저 패망한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흠정만주원류고’의 기록을 통해서 본 백제의 패망 시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아마 ‘북사(北史)’와 ‘구당서(舊唐書)의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참고한 듯하다.

‘북사(北史)’에는 “백제에는 5방(五方)이 있고 방은 10군(郡)을 관리한다”라고 했고, ‘구당서(舊唐書)’에는 “6방이 각각 10개군을 관리한다”라고 했다.

두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군이 50개 내지 60개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해 빼앗은 것은 37군이다. 빼앗지 못한 군이 5분의 2나 된다. 이것은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상당 부분 그대로 보존됐음을 뜻한다.

660년 당나라 소정방에 의해 멸망한 백제는 일부분에 불과하며 절반 가까운 세력이 그대로 남아 백제라는 이름으로 존속했다는 것이 ‘흠정만주원류고’의 주장이다.

어느 민족이나 자기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미화하고 과장하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속성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미화나 과장은커녕 오히려 축소되고 폄훼된 경향이 짙다는 것이다.

반만년을 이어온 우리 역사는 지금 뿌리가 없다. 고조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1권은 없이 2권부터 발행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42권이 뿌리 없는 한국사의 몰골을 단적으로 반영한다고 하겠다.

한 나라에서 역사의 단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그 나라의 얼과 정신과 문화와 정기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늘날 그 오래전에도 사실이었던 일,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이어야 할 역사의 사건들을 두고 마치 한편의 소설을 다루듯이 하거나 잘못된 사실을 마치 외눈박이처럼 맹종하고만 있는 꼴이라면 그 잃어버린 역사는 언제나 찾아 오나 ??

故(고)로 天下萬事(천하만사)가 先在知我也(선재지아야)니라.
然則其欲知我(연즉기욕지아)댄 自何而始乎(자하이시호)아.

그러므로 천하만사 가운데 먼저 할 일은 나를 아는 것이다. 그러한 즉 나를 알려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사학(史學)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 10월 3일에, 행촌(杏村) 이암(李& #23890;).